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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자전거 여행 - 중
안선웅  2016-07-12 15:31:12, 조회 : 1,480, 추천 : 334

자전거 여행 - 김훈 에세이

숲 속에서 빛은 사람을 찌를 듯이 달려들지 않는다.

나뭇잎 사이로 걸러지는 빛은 세상을 온통 드러내는 폭로의 힘을 버리고 유순하게도 대기 속으로 스민다.

5월의 산에서 가장 자지러지게 기뻐하는 숲은 자작나무숲이다. ..자작나무숲이 흔들리는 모습은 잘 웃는 젊은 여자와도 같다. ... 그 이파리들은 사람이 느끼는 바람의 방향과는 무관하게 저마다 개별적으로 흔들리는 것이어서

숲의 빛은 바다의 물비늘처럼 명멸한다.

p135.  도산서당은 맞배지붕에 홑처마 집이다... 한옥이 건축물로서 성립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들만을 가지런히 챙겨서 가장 단순하고도 겸허한 구도를 이룬다.  그 맞배지붕과 홑처마는 삶의 장식적인 요소들이 삶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부화(浮華:실속없고 겉만 화려함)를 용납하지 않는 자의 정신의 삼엄함으로 긴장되어 있고,

결핍에 의해 남루해지지 않는 자의 넉넉함으로써 온화하다.

p 168, 이 마을 노병만 씨네 세 살짜리 소는 도통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천둥벌거숭이다.  고랑을 따라 똑바로 걸을 줄도 모르고, 쟁기를 끌고 오는 주인의 보폭에 걸음을 맞출 줄도 모르고 옆 고랑을 밟아 뭉개지 않고 사뿐히 U턴할 줄도 모른다. .. 일 배우다 말고 자꾸만 군입질을 하려고 한눈을 팔아서 주둥이에 멍을 씌웠다. 때려주면 대가리를 내두르며 반항하고, 더 때려주면 아예 팽개치고 집 쪽으로 걸어간다.  노씨는 이놈을 겨우내 가르쳐서 말귀를 뚫어놓아야 내년 농사를 할 수 있다..... 의풍 마을의 소들은 대개 25년을 일한다. ...노씨는 이 한심한 놈을 데리고 내년 봄에 2천 평을 갈아야 한다.

매맞는 소가 불쌍한지 때리는 인간이 더 가엾은지, 의풍에서는 분간하기 어려웠다.  때리고 맞는 것이 다 한가지로 보였다.   어느 쪽이 때리고 어느 쪽이 맞는 것이 아니다. 양쪽 모두 자신의 운명을 실천하고 있었다.

P 173.  산속 비탈 밭에서 거두지 않은 고추가 서리를 맞아 지천으로 썩어간다. ...고추값이 맞지 않고 품삯을 댈 길이 없어 거두지 못하던 차에 서리가 내렸다는 것이다. ..그는 땔감으로 쓰려고 마른 콩대를 지게로 져나르고 있었다.  
그의 지게 짐은 키보다 높았다.  바람이 짐을 떠밀자 지게에 짓눌린 그는 쓰러질 듯이 비틀거리더니 목발을 짚고 다시 일어섰다. 그는 게처럼 모로 걸어가며 바람의 공세를 피했다. 무너지고 또 일어서면서 그는 썩어가는 고추밭 고랑을 따라서 집으로 돌아갔다.

지쳐서 쓰러지는 사람에게 기운내라고 말하는 것이 도덕인지 부도덕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P 181  화엄(華嚴)은 사람들이 이 세계 속에서의 삶과 시간과 공간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한 온갖 개념의 가건물을 철거한다.   이 세계를 언어로 치환해 놓은 결과물을 인식이라고 말하려는 인간의 분별을 향하여, 그것은 인식이 아니라 세계와의 단절과 차단일 뿐 이며, 폐쇄된 존재의 미망이라고 화엄은 가르친다.   ...부석사는 신라 화엄의 종찰이다.

204  춥고 메마른 땅에서 올라온 채소가 달고 고소하다.

237  멧돼지는 통째로 무게를 달아서 1근에 만 원씩 쳐준다. 대개 200 ~ 400근 이다. 그는 개 다섯 마리를 데리고 산으로 들어간다.  멧돼지 한 마리 잡으려면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서 4,5일을 쫓아가야 한다. ... 개가 오판해서 엉뚱한 곳을 헤맬 때도 있다. 그는 개를 나무라거나 때리지 않는다. “개를 때리면, 때려도 말 안 듣는 개가 된다. 개의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 그는 말한다.

253  타오르는 불꽃 속은 맑고 고요하고 깊다. ... 산소가 많이 필요한 불길은 거죽에서 너울거리며 뻗어나가는 겉불꽃이다.  겉불꽃은 아직 정돈되지 않는 젊은 불길이다.   겉불꽃은 자유롭고 무질서하고 불안정하다.

대체로 분청사기와 막사발의 그 자유롭고 여유로운 질감은 이 겉불꽃이 놀다간 자리이다. 속불꽃은 바람과 뒤엉키는 그 놀아남의 흔적을 들키지 않는다. 속불꽃은 맹렬하고도 적요하다. ... 이 불길은 흙을 흔들지 않고 고요히 흙 속으로 스며서 고려 청자나 조선 백자의 표면에 깊고 깊은 색깔의 심층 구조를 드러나게 한다.

깊은 것은 깊은 것들 속에서 나오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261  이 자전거는 해발 1,100미터의 고지에서 태백산맥을 넘게 될 것이다..... 출발 전에, 자전거를 엎어놓고 닦고 조이고 기름 쳤다. 서울서 가지고 간 장비들을 현지에서 출발하기 전에 버리고 또 버렸다.  수리 공구 한 개가 모자라도 산속에서 오도가도 못할 테지만, 장비가 무거우면 그 또한 오도가도 못한다.  스패너 뭉치와 드라이버 세트와 공기 펌프와 고무풀은 얼마나 사랑스런 원수덩어리인가.  

출발 전에 장비를 하나씩 점검해서 배낭에서 빼 버릴 때, 몸이 느끼는 두려움은 정직하다.  배낭이 무거워야 살 수 있지만, 배낭이 가벼워야 갈 수 있다.  그러니 이 무거움과 가벼움은 결국 같은 것인가.  같은 것이 왜 반대인가.

  출발 전에 장비를 하나씩 빼 버릴 때 삶은 혼자서 조용히 웃을 수밖에 없는 비애이며 모순이다.

266  산맥에 가득 찬 가을빛 속에서 겨우 한줌의 빛오라기를 추슬러 간직하는 카메라는 가엾은 기계였다. 내일은 또 내일의 빛이 쏟아져 내릴 터인데, 그 감당 못할 영원성 속에서 그가 작동하는 셔터의 60분의 1초는 가엾은 시간이었다.

그 60분의 1초에 의해 세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은 힘겹게 화해하고, 그 가엾은 기계의 안쪽으로 세상의 무늬와 질감은 겨우 자리잡는 것인데, 사람들이 영원성을 향하여 지분덕거리는 연장들의 안쓰러움은 대체로 이와 같고 언어 또한 저와 같아서, 가을의 태백산맥은 입을 열어서 말을 주절거리려는 인간을 향하여 입 닥쳐라 입 닥쳐라 한다.

하나님이 주신 텍스트. 성경과 그리고 삶. 많은 것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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