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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주를 대령하라.
안선웅  2015-10-05 06:26:14, 조회 : 1,317, 추천 : 65

작두를 대령하라. 포청천.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나의 영조 되지 아니한 것도 다 하나님의 붙드심이다.

영화 사도는 마치 거울을 보는 느낌이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보냈던 나의 못난 모습들이 그대로 생생히 담긴 자화상이었다. 아내는 옆에서 계속 훌쩍이고...(나와서는 유아인이 좋단다.  여자란 그 와중에도.)

달려오는 손자(정조) 앞에서의 그 당황한 눈빛.
그리고도 그 비극을 멈추지 못하는 그 무엇.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  
온 세상이 도는 듯한 어지러움.  

내가 어디 있지.
무엇을 하고 있나.
왜 이러는가.
영조의 얼굴에 내 얼굴이 자꾸 겹친다.

애증. 사랑한 만큼 미워하고.
기대한 만큼 실망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만큼 분노하고.  
자식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분명 자식을 사랑하고 무엇이라도 해주려는 희생이었고.
그들을 위해 옳은 생각이었지만.

결과는...현실은...
형편없는 실력에 못남에
주체하지 못하는 자기 감정에
아이들에게 상처만 남겼다.  분노만 남겼다. 관계 단절이었다.

정조 역할을 하는 셋째는 내가 둘째 아들 놈에게 화를 낼 때면
정의의 사자처럼 달려와서 제 형을 구한다. 온 몸으로 부딪혀.

영화를 보고 미안한 마음에 큰 딸을 보고 말한다.
“야 이 사도야”
“뭔 소리래” 하고 자기 방에 들어간다.

밤 12시가 넘어 들어오는 아들놈에게 한마디 한다.
“야 오늘 같이 잘까”  
“싫어. 피곤해. 제발 귀찮게 좀. 하지마”
“이 놈. 뒤주에 가둬 버릴라”  
“영화 봤어. 어땠어”  
“미안하더라. 너희들한테. 잘해 줘야지.”
“나도 뒤주에 가둬 줘. 공부 하는 거 지겨워”
......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조사를 바꾸자면

가난한 자만 복이 있는가.       부자는 제외하고
가난한 자도 복이 있는가.       부자는 더더욱이고.

내가 왜 자꾸 부자를 신경쓰지.

네 이웃이 누구인가 처럼.  
부자가 누구인가 라고 물으신다면
   그건 비교에서 발생한 바로 그자들이다.

이리 저리 생각해 보면 자격이 아니고 증상인 게 맞나.

가난해야 복이 있나니 인가.
가난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도 있으니.

어쨌든 가난에 대한 답은 천국이구나.
우는 자에 대한 약속은 위로인데.
가난한 자에 대한 약속은 부유함이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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