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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례에 관한 개혁신학적 이해
봉파리  2007-10-18 14:54:12, 조회 : 5,349, 추천 : 781

예배와 성례에 관한 개혁주의적 입장을 서술해 보았습니다.
2007년 추수감사주일에 저희 교회에서 성찬과 성례를 시행할터인데
좋은 이해를 토대로 성찬 기쁨의 자리에 참여했으면 합니다.



성례의 정의
성례란 주님이 제정하신 것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거룩한 교회의 예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물론 구원의 조건은 아니다. 성례를 정의하는 신조들과 여러 신학자들의 고백속에서 성례는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적 인표이며 은혜를 받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성례가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나 성례를 통하여 말씀을 공급하기 위하여 제정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방도이기 때문에 이 둘과의 관계는 필연적이다.

성례의 중요성
성례를 통하여 인간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적 개혁교회의 예배구조는 말씀과 성례로 이루어져 있어서 보는 말씀이라는 측면에서 성례는 은혜를 받는 수단이 된다.

성례의 종류
개신교의 성례 : 세례와 성찬
카톨릭의 성례(칠성례) : 세례, 견진, 성체, 고백, 혼인, 신품, 병자성사  + 준성사.

성례의 목적 : 기독교신앙안내서 제26장에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확인하며 우리 믿음의 훈련을 쌓아 가는데 목적이 있다’
성례의 효과 : 성례집행자의 경건성. 뜻에 있지 않고 성령의 사역과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그래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서 ‘비 자격자의 성례도 인정한다.’고 했다.

2. 성례의 성경적 배경
성례는 세례와 성찬으로 구성된다고 이야기 했었다. 여기에서 먼저 세례의 신약적 배경과 구약적 배경에 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신약의 세례는 창세기 17장의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하신 언약에서 나온 할례와 이스라엘 백성의 홍해 도강과 성결의식에 근거하여 있다. 할례가 신약의 세례인가? 라는 질문은 칼빈이 말한 ‘세례가 할례의 위치를 계승하고 우리에게 대하여 동일한 역할을 다한다는 것에 대하여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강요 4:16:4)로 대답하고 있다.

①        신약의 세례는 요한의 세례로부터 시작된다
칼 헨리는 요한의 세례를 관습적인 것에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회계의 요건에 관련된 것이 포함된 것으로 본다. 세례의 특성은 신적인 기원을 가졌다는 것이다. (요1:33)
②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예수님의 세례는 메시아로서의 사역의 출발을 선포하는 것이며, 인간의 죄와 비애를 짊어지시는 사역의 출발을 의미하며, 자신의 죽음과 연관시켜서 이야기 하고 있다. 예수님은 세례를 해석하셨을 뿐만 아니라 세례를 승인하고 명령하셨다. (마28:19)
③        사도들의 세례이해
베드로 :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의 은사가 동반된 회개와 세례를 주장.
바울 :  세례 자체가 자신의 주 사역이 아님을 이야기하고(고전1:14-17),  세례를 통한 성도들의 한 몸됨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하나됨. (갈3:27,28) 또한, 골2:11-12에서는 할례와 세례의 연계성을 말씀하고 있다.

두번째로는 성찬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자. 구약의 유월절 잔치와 신약의 복음서와 서신서에서 성찬의 성경적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1)        유월절 잔치(출12장) : 성찬의 유래와 구약적 배경을 말씀하는 유일한 성경. 신약의 모형으로 어떻게 신약의 성찬이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를 거룩한 언약의 피를 상징하는 지금의 포도즙에 해당된다고 이야기 한다.  어린양의 실체를 신약의 예수그리스도로 말한다.
(2)        복음서 : 성찬을 이야기하는 복음서의 여러 부분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예수님이 유월절 잔치를 먹고 싶어하셨다는 것과,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며 이것은 나의 몸이라고 하신 것과, 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를 말씀하셨다.  이러한 성찬에 참여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간다고 한다. 이것은 성찬에 참예하는 자들에게 있을 하늘의 법정적, 보장적 은혜를 말씀하신다.

(3)        서신서 :  바울은 고전11:23-32절을 통하여 성찬에 관한 복음서의 말씀을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주의 만찬석상에 참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3. 성례의 역사적 배경
1)        초대교회
1세기의 익나티우스, 바나바의 서신, 저스틴, 디다케 : 성찬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으며, 금식과 회개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며, 성찬을 성도들의 양식으로 이해했으며 세례이후 하나의 성찬을 먹고 마실 수 있다.
2-3세기의 이레니우스, 알렉산더의 클레멘트, 터툴리안, 히폴리투스, 오리겐 :  세례를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회 입문으로 여겼고, 성찬은 영적성장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유아세례의 찬,반이 공존.
4세기의 예루살렘의 시릴, 바질, 닛사의 그레고리, 암브로스, 요한 크리소스톰 : 축성을 통하여 성찬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주장. 성령의 기름부음을 강조.
2)        중세교회
(1)        세례 : 중세시대의 세례는 ‘그것을 통하여 죄가 사하여 진다’는 뜻을 갖는다.  죄에 대한 문제는 도나투스 주의자들과 어거스틴의 뜻에 동조하는 사람들간의 팽팽한 긴장감을 가져오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이단자에게서 받은 세례도 교회가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베푸는 자의 거룩성에 상관없이 효력이 있음을 주장했다. 로마교회는 신교의 세례를 원칙적으로는 인정했지만 실제로는 의심했다. 중세 가톨릭에서는 ‘가정적 형식의 세례’를 주었다. 롬바르투스와 아퀴나스는 ‘성인은 세례를 받기 전일지라도 믿음 안에서 마음에 나타난 세례의 효과를 얘기할 수 있다고 했다.’
(2)        성찬 : 중세의 성찬은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라 표현했다. 이러한 개념은 사제가 변화된 그리스도의 몸을 그리스도 자신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림같이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이다.
▶ 화체설 : 로마 가톨릭은 성만찬의 떡과 포도즙이 사제인 신부의 축성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의 참된 몸과 피로 변한다는 교리 주장. (본질에서의 변화) 이것은 1215년 라테란 회의에서 제정되고, 1551년 트렌트회의에서 재확인되어 천주교의 엄격한 교리가 되었다.
중세의 성찬은 화체설을 중심에 두고 논쟁들이 계속되어졌으며, 이러한 것들이 종교회의 거쳐서 교리화 됨으로써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3)        종교개혁자들의 성례관
(1)        세례관
①        루터 : 세례를 침례로 이해한 것 같고, 그것을 세례받지 않는 자로부터 신자를 구분하는 외적인 표로 이해. 세례는 죄와 죽음을 의미한다. 세례는 사탄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양자의 결연이며, 죄의 용서이지만 로마교회가 가르치는 바와 같이 원죄의 본질을 멸하는 것은 아니다.
②        쯔빙글리 : 합리적이며 분석적인 신학적입장을 가진 그는 세례가 인간의 죄를 씻을 수 있다는 생각을 철저히 부정하였다. 세례는 외적인 표시며 성례에 불과하다. 즉 세례는 내적인것을 변화하거나 불러 일으킬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표지와 표지된 것의 분리라는 중요한 사상이 있다. 세례는 외적인 표지이다. 단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결속시키는 표지이다.
③        칼빈 : ‘세례를 그리스도 안에 접붙여 짐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서 간주되기 위하여 교회 공동체에로 받아들여지는 입회의 표지이다” (강요, 4:15:1) 그 목적은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며 우리의 고백이 사람들 앞에서 설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세례의 유익은 첫째, 우리의 죄가 씻겨졌다는 증거 혹은 표지이다. 둘째,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죽음과 새 삶을 표시한다. 셋째로, 세례는 정화와 신행의 은혜만이 아니라 그밖의 모든 은사에 대한 약속이다. 역시 쯔빙글리와 함께 ‘표지와 표지된 것’사이를 구분한다.
(2)        성찬관
①        루터 : ‘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내 피이다’는 말씀을 문자대로 믿는 공재설을 주장.  성만찬의 참여는  그리스도를 나눔으로 보았고 그것이 그리스도와 하나님됨과 죄 사유 약속의 입증이다.
②        쯔빙글리 : ‘이것은 내 몸을 뜻한다’ 라는 상징적인 기념설을 주장. 성찬은 단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눅2:19)
③        칼빈 : ‘성만찬은 외형적인 표시로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이며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경건의 입증이다.’ 쯔빙글리와 루터의 중간 위치를 취한다.

세례
1)        세례의 의미
‘그리스도와 연합’을 의미한다.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연합 관계이다. 죄용서, 혹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뿌림으로써 죄악으로부터 정화됨을 의미도 있다. 그러나 강조점은 ‘연합’에 있다.
2)        세례의 양식
세례의 양식은 침례가 세례의 방식으로 올바른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침례교회의 논증과 대비하여 성경은 두가지 측면에서 성경은 침례를 주장하지 않는다. 첫째는 LXX의 구약과 신약에서 침례 시행의 의미가 없으며, 두번째는 그리스도의 장사지냄과 부활이 침례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것이 아님을 복음서와 서신서에서 알 수 있다.
3)        유아세례
성경에는 유아세례에 관한 확실한 명령은 없으나, 함축적으로 유아세례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칼빈은 이삭의 할례사건을 근거로 유아들에게 언약의 조건에 대한 고백과 서약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표징(세례)을 거부하는 것을 부정하였다. 유아들은 직접 언약의 상속자로 태어났으며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으므로 세례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경에 확실한 명령이 없다는 것은 사도들은 유아세례를 자명한 것으로 혹은 보편적인 것으로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유아세례의 찬반을 결정하는 것은 예정론에 근거하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는 것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요시 하며 주관적 신앙을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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